이번에 제대로 읽어보기 전까지 나는 걸리버 여행기가 단순히 소인국, 대인국에 대한 동화 같은 이야기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책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 신랄한 풍자와 인간 혐오에 강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영문학에선 조나단 스위프트를 미센트로피스트로 본다더니 과연 그러했다.
걸리버 여행기의 1부에서 3부까지는 걸리버가 소인국, 대인국, 라퓨타를 거쳐 여행을 하면서 겪은 일들이 묘사되어 있다. 조나단은 그 과정에서 주로 방문국의 정치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걸리버를 대하는 원주민들의 태도에 빗대어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난하고 있다.
4부, 휘늠의 나라 여행기에선 그 정도가 비판의 단계를 넘어 거의 혐오의 단계에 이른다. 말의 외형을 한 휘늠은 합리적인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로 걸리버는 이들을 굉장히 이상적인 존재로 묘사하며 거의 숭배하기까지 한다. 반면 인간의 외형을 한 야후는 휘늠과 걸리버를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싫어하며 길들이기조차 힘든 고약한 본성의 존재로 묘사된다.
나는 조나단이 인간의 품위를 이렇게까지 떨어뜨린 것에 놀랐고, 그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조나단의 표현은 인간을 구원의 희망조차 없는 구제불능의 존재로까지 보이게 할 정도로 심한 것이다. 비록 걸리버의 생각에 공감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 사회의 일원이 되어 인류를 위해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 판단하는 사람으로서 인간을 변호하고 싶다.
분명 조나단의 비판은 많은 부분 타당하다.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 때문에 이성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 사회에서 온갖 불합리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인간이 때때로 우매하고 혐오스럽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은 이성 외에 감성이란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이성적, 불완전함, 지저분함, 광기, 탐욕, 싸움. 인간이 이성이 아닌 감성에 지배당할 때 이러한 말들을 쓸 일이 생긴다. 모두 바람직한 가치로는 여겨지지 않는 말들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묘사하는 것 역시 인간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고상한 휘늠도, 짐승 같은 야후도 인간을 완전히 나타내지 못한다. 둘 다 인간성의 많은 부분을 보여주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전혀 다른 면을 반반씩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나는 걸리버와 생각이 다르다. 나는 성자와 같이 엄숙한 존재보다 인간의 서툴고 유치한 면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 존재가 더 인간적이고 인간으로서 우월한 존재라 생각한다.
휘늠은 고상하고 정중하고 지극히 이성적인 존재이다. 누군가의 죽음에도 슬퍼하거나 유감스러워하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맞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다. 슬퍼한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비록 그것이 실제로 어떤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순간 바닥을 움켜쥐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우는 것이 더 인간적이라고 본다.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만 하는 천덕꾸러기 같지만 인간을 이루고 있는 그 절반의 부분 때문에 인간이 더 인간다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치한 글을 참 아무렇지 않게 잘 쓰는 것' 같다고라?
오마이 보기에는 '무거운 주제'를 아무렇지 않게 참 잘쓰는거 같은디?
인류의 기나긴 역사를 통한 성선설, 성악설, 성중설의 논란,
야성과 신성의 중간이라는 인성 논란,
이를 걸리버 여행기에서 우화로 보여준 휘늠과 야후를 풀이하여 '불완전하기에' 사랑을 하고 이를 통해 완전을 지향하는 여정이 인생이라고 하는거구먼.
나이가 든다는 거는 우리 속의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을 그냥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게 적당히 무심해지는 건가봐.
우리의 생식기를 함 생각해봐.
생명을 만들어내고 2차성징을 드러내는 호르몬을 분비해주며
섹스를 통해 온전한 남자, 여자 임을 느끼게 해주는 신체기관이면서
동시에 강간, 불륜 등 범죄의 근원지 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에 동물을 넘어서게 해주는 모든 발명품에도 그런 빛과 그림자가 있지.
칼은 생명의 질을 높여주는 요리를 하는데 쓰이지만 인간을 죽이는 도구로도 쓰는거.
그런 예는 너무도 많지.
교육을 통해 악을 최소화하고 선을 최대화 해보려는 인류의 노력에 그냥 동참하자.
아무렴, 사랑하는 이가 죽었으면 돌아 올 수 없어도 땅을 치고 울어야지.
졸업식날 아무리 섪게 우는 애도 학교에 더 남아있고 싶어서 우는 건 아니니까.
거기에 너무 동참하는 것 같아서 (동참이 아니라 감화? ...)
요즘 나 자신은 조금 나쁘게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막 드는 거야 Orz